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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궁중문화축전 왕실내의원 행사(2019.4.29.~5.3.)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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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궁중문화축전 왕실내의원 행사(2019.4.29.~5.3.) 체험기

창덕궁에서 발견한 세 가지 대비

     베뢰아국제대학원대학교 Th.M.과정

장재규

지도교수 김영관 

제출 2019. 5. 9.

 

A. 현대 디자인의 단순함과 창덕궁의 자연스러움에서 드러나는 대비

몬드리안(Pieter Cornelis Mondriaan, 1872~1944)은 어디를 가든 창문을 가렸다. 기차를 타든, 마차를 타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밖에 나가면 하는 행동과는 정반대일 것이다.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추구하는 양식이 극단적인 단순함과 추상성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세상이란 ‘난잡함’ 그 자체였다. 나는 직업상 어느 정도 몬드리안을 이해할 수 있었다. 최소한의 시각요소로 추상적인 디자인을 하려고 애쓰다 보면 문득 자연 경관이 낯설어지고 그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이 지저분해 보이기까지 한다. 수채화로 물을 튀기고 거친 붓 자국을 내며 풍경화를 그리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몇 주 전, 그동안 작업한 파일들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10년 전 작품들을 보게 되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만든 것처럼 생소하고 지금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한 마디로 가공되지 않은 듯 자연스럽고 심지어 거칠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웠다. 한동안 그 원인을 알아 내기위해 고심해야 했다. 작업 도구를 바꿔보기도 했지만 다시 단순해졌다. 기본적으로 복잡한 것이 싫어진 상태에서 복잡한 디자인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자연 경관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는 것은 가족뿐만 아니라 직장 동료들까지 알고 있었고 그래서 내가 창덕궁의 풍경에 큰 기대감을 갖지 않는 모습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초행길이 그러하듯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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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덕궁은 다른 궁궐과는 달리 오밀조밀하고 자연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개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는 키 작은 문들은 2~3층 정도의 작은 계단들 위에 올라와 있었고 왜 있는지 모를 낮은 담을 따라 작은 방들이 각기 다른 모양으로 연이어, 혹은 띄엄띄엄 있었다. 어떤 건물은 2층으로 이어지는 외부 계단이 있었는데 마치 어린아이가 드나들 만큼 작아서 어찌나 귀여운지 보기만 해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주 찾았었던 경복궁은 은근히 중국의 궁궐을 본 따려고 노력한 듯 웅장해 보이려고 애쓴 느낌이 있는데 창덕궁은 그렇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더 한국적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산을 그린 풍경화를 보다가 한국의 산을 그린 풍경화를 보면 정말 낮고 귀엽고 부드럽다는 인상을 받는다. 창덕궁은 그런 한국의 산을 닮았다.​ 그중에서도 ‘왕실내의원 체험’ 행사가 열린 ‘약방’藥房은 마치 난장이들의 거처인 듯 더더욱 아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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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한의학의 연역적 사고와 양의학의 귀납적 사고가 주는 대비

무엇보다 내의원 어의, 의인과 의녀의 절제되면서도 편안한 배색의 복장이 눈길을 끌었다. 드라마에서 보던 복장을 처음으로 직접 본 것이다. 예전부터 이 복장이 무척 마음에 들었었다. 일반적인 한복은 지나치게 밋밋해서 답답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과도하게 화려한 배색과 장식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곤 했었다. 그에 비해 내의원 복장은 실용성을 최우선으로 하되 궁궐에 어울리는 품위를 갖추기 위해 심플하면서도 비례가 잘 맞도록 디자인 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 마디로 ‘거품이 없는 비례미’로서 내가 그토록 추구하는 스타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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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에 대한 전문성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각종 설치 장식들이 조선 시대 당시의 분위기를 잘 이끌어 내고 있었다. 현대 한국인다운 표현으로 말하자면 마치 사극 드라마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그리고 ​단순히 전시물 관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내의원 진료 체험을 하고 건강상의 문제도 지도를 받을 수 있어서 유익한 행사라는 이미지를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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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진찰해 주신 어의와 안내하는 젊은 스탭들의 활기차고 친절한 모습에 호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분위기가 이 행사 이미지에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요즘 젊은이들 특유의 자연스러움, 솔직함, 위트가 곳곳에서 번져 나왔고, 어의들은 각 분야에서 유명한 분들이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동네 한의사들에게서 보았던 고리타분한 모습과는 달리 유쾌함과 자신감이 드러났다. 행사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예상하기로는 오늘이 평일이기도 하고 왕실 내의원 체험 행사 컨텐츠에는 공연같은 것도 없으니 한적하고 조용할 것 같다고 생각했으나 행사장에 들어오자마자 그 생각은 깨어졌다(그 바람에 결과적으로 계획했던 Th.M.수업은 진행할 수 없었다!). 이런 분위기는 나에게 있었던 ‘한의학은 지루하고 정적’이라는 편견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역시 무슨 일이든 중요한 것은 그것을 누가 하느냐이다. 늘 그랬듯이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한의학의 치료 방법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로 양의학에 의존해 왔던 탓도 있지만 환경이 달라져서(궁궐) 그런 것인지 한의학의 진료법은 유난히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양의학은 각각의 증상을 관찰하고 그 증상에 따라 개별적으로 대응한다. 그러나 한의학은 증상을 모아서 그 공통점을 찾고 보이지 않는-관찰할 수 없는- 근본적인 원인을 추론한다. 즉, 양의학은 각 사례별로, 구체적 경험으로 접근하는 귀납적 방법으로 진단하고 있었고, 한의학은 통합적으로, 추상적 사유로 접근하는 연역적 방법이었다. 그러고 보면 한의사들에게서 종종 들을 수 있는 말은 이런 것이었다. "그것 하나만 고쳐서는 소용이 없어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야죠" 이 말은 연역적 사고의 결정체와도 같은데, 동시에 은근히 양의학의 귀납적 방법을 비꼬는 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도 이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우리의 추상적인 이성은 구체적인 실재를 다루는 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거둘 수는 없었다. 우리의 이성은 합리적이고 고정적이고 이상적인 데 반해 현실의 실재는 불합리하고 변수가 많다. 이런 면에서 실재를 파악하는 데는 추상적 사유로 판단하는 연역적 사고보다는 구체적인 경험으로 판단하는 귀납적 사고가 더 적합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추상적 사유는 주관성이 개입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 누가 진료하느냐에 따라 진단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명의를 만나면 시체라도 살아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내 경우도 작년에 동생을 따라 억지로 끌려갔던 한의원에서는 모든 면에서 건강하다는 좀 납득이 안 되는 진단을 받았으나 오늘은 전혀 달랐다.

 

분명 한의학의 연역적 접근은 양의학의 귀납적 접근이 가진 한계를 넘어서는 고유한 장점이 있다. 양의학이 피상적인 증상에 대처하느라 전전긍긍할 때 한의학은 그 뒤에 숨겨진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의학이 양의학보다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연역적 사고는 그 자체가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추상적 사유에 의존적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당대에는 획기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라며 칭송을 받았으나 훗날 직접적인 관찰과 실험에 의해 즉, 구체적인 경험에 의해 수많은 반박을 받아야 했고 그만큼 수많은 수정을 해야만 했다. 한의학도 정신분석 상담하듯 책상에 앉아 이야기하기 보다는 번거롭더라도 일어나 함께 관찰 장비와 실험 장비 앞으로 가서 더 구체적으로 실재를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들어간다는 장점에 도취되어 여전히 추상적 사유 속에 갇혀 있으면 끝내 양의학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왕실내의원 체험 행사장에서 나의 지도교수인 김영관 교수님은 이사로 불리셨다(스탭들에게 ‘교수님’이 계신 지를 물으니 아무도 알지 못했다). 언뜻 보기에도 무척 바빠 보이셨는데 그래도 잠시 짬을 내서 창덕궁을 직접 가이드 해 주셨다. 언제 봐도 나이조차 가늠하기 힘든 멋있는 분이신데 그렇게 높은 직책으로 활동하시는 모습을 보니 더욱 그러했다. 나는 일을 시작한지 10년 동안 말단에서 사원으로 근무했고 최근에야 비로소 관리직에 올랐기 때문에(그러나 공식 직급은 여전히 사원이고 더구나 기존 실무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승진이 아니라 겸직이라고 봄이 정확한 표현이다) 나도 언제 즈음이면 저렇게 영향력 있는 자리에서 존경받는 일을 할 수 있을까 부러웠다. 그래도 관리직을 경험 해보니 나는 역시 홀로 몰두하는 연구직이나 예술직이 어울리는 사람임을 깨닫게 되었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는 없다. 그 현실은 나에게 이 옷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과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둘 다를 의미하고 있고 그것이 나에게는 여전히 괴로운 딜레마다.

 

C. 존덕정과 낙선재에서 본 이상과 현실의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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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님이 마지막으로 가이드 해 주신 ‘낙선재’는 창덕궁 안에서 어딘가 묘하게 이질감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가장 최근에(그래도 무려 1847년) 지어졌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작은 굴뚝들이 많은 것이 특이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달랐던 것은 창덕궁의 다른 건물들이 빈틈없이 화려하게 채색된 ​것에 비해 낙선재만은 아무런 장식 없이 소재 본연의 색을 그대로 황량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현판들도 하나같이 심하게 색 바랜 상태로 기둥 곳곳에 걸려 있었다. 수수하면서도 어디가 처연한 그 모습은 그곳에 슬프고 기막힌 이야기들과 인물들이 숨 쉬고 있었던 곳임을 말해 주고 있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낙선재는 황족들이 마지막을 보낸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최근 영화화 되어 유명해진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가 여기서 그 한 많은 생을 마치셨고, 마지막 황후이신 순정효황후, 마지막 황태자이자 대한제국 황실의 3대 수장이었던 영친왕과 영친왕비, 그리고 최근까지 황실의 복권을 위해 노력하였던 이구 황세손이 모두 이곳에서 훙서하셨다.

낙선재를 나와 바로 뒤에 있는 ‘후원’의 매표소에 도착하니 ‘오늘 입장권은 매진’이라는 전광판이 냉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알고 보니 정해진 시간에만 입장이 가능하고 가이드와 함께 이동하며 관람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조금 전, 오늘 마지막 입장이 끝난 것이다. 아쉽게 돌아가려다 매표소에 직원이 있는 것을 보고 다가가서 물어 보니 혼자 왔냐면서 표를 한 장 줄 테니 빨리 들어가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오늘 마지막 관람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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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를 따라 처음 도착한 곳은 ‘부용지’와 ‘주합루’였다. 마침 ‘부용지의 오후’라는 창덕궁 후원음악회가 개최되고 있었다. 평소에 국악을 즐기지 않던 나로서는 그렇게 반갑지는 않았었기 때문에 그저 부용지의 아름다움만 사진으로 담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멀리 ‘규장각’의 노대에서 왕을 따라 나오던 후궁으로 보이는 한 여인이 왕을 먼저 보낸 후에 고적하게 서서 '매화가'를 부르는 모습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동하고 말았다. 국악이 얼마나 이 한국의 자연과 어울리는 노래인가를 사무치게 느꼈다. 부원장님이 간혹 사무실에서 국악을 듣는 모습이 참 고리타분해 보였는데 이러다 나도 듣게 될 것 같다는 걱정이 밀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카메라 셔터를 자꾸 눌러 대서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청각보다 시각에 예민한 직업병이 아닐 수 없었다. 귀로 감동하면서도 어느새 촬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화려한 경치 속에 호젓하게 선 여인의 모습이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거대한 유화 작품(궁궐이므로 동양화라고 해야 될 것만 같지만 색색이 화려한 모습에 도저히 차분한 수묵화와는 연관을 지을 수가 없다)을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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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어진 마지막 공연은 나에게는 불행히도 무용이었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냐면, 실은 국악보다 더 싫어한 것이 한국 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다시 편견이 무너졌는데, 높은 영화당 안에서 단 한 명의 여인이 ‘춘앵무’를 홀로 추는 그 아름다움에 넋이 나갈 것만 같았다. 어떻게 이곳의 모든 것과 이토록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이렇게 찬연한 곳에서 이렇게 찬란한 궁중 문화를 즐길 수 있었던 사람들이 무척이나 부러웠고 동시에 이 권리를 빼앗긴 분들이 느꼈을 상실감에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후원의 아름다움에 빠져 들어 있었을 때, 가이드가 앞으로도 40분을 오르막길로 더 가야 한다면서 혹시 힘들어서 포기하실 분들은 지금 후원 입구로 돌아가시는 것이 좋다는 협박조의 안내를 받고서야 비로소 시간을 돌아볼 수 있었다. 곧 왕실내의원 행사가 막을 내릴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서둘러 후원 구경을 마치고 내려와야 했다. 후원 입구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에 다시금 낙선재가 떠올랐다. 저렇게 아름다운 후원을 등지고 후원과는 너무나 상반되는 수수한 모습으로 소외된 곳, 낙선재. 그리고 그곳에서 살다 가신 분들이 떠올라 돌아가는 길에 잘 가꾸어진 꽃들을 보면서도 씁쓸한 마음을 막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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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 내가 후원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곳은 ‘존덕정’이었다. 후원에서 가장 빼어난 곳이라 세워놓은 정자들도 많았는데 그 중 하나인 존덕정의 들보에는 정조가 세상 앞에서 너무나 오만하게도 "뭇 개울들이 달을 받아 빛나지만 달은 오직 하나이다. 내가 바로 그 달이요. 너희들은 개울이니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에 합당하다"라는 내용의 글을 빼곡히 적어 놓은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 편액이 걸려 있었다.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하나의 궁궐 안에 있는 그 존덕정과 낙선재의 극명한 대비는 한 사람 안에 있는 이상과 현실 또는 본질과 실재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참으로 모순적이다.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도 마찬가지다. 관리자와 실무자의 관계도 그렇다. 말단 실무자 10년 만에 처음으로 관리자가 되었을 때 나를 향한 민원인들(업무에 민원 처리가 포함되어 있다)의 눈빛과 태도가 친절하게 돌변하는 것을 보고 위화감과 혐오감을 느꼈었다. 무슨 원숭이들도 아니고 그저 사회적 지위가 달라졌다는 것만으로 사람을 이처럼 다르게 대하는가. 실제로 자기 손과 발로 힘들게 일하는 사람은 실무자들인데 관리자들은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는 것이 분했다. 스트레스 호르몬량이 사회적 지위와는 정확하게 반비례한다는 연구 결과가 정말로 정확한 것이었음을 체득했다.

 

물론 관리자는 의사결정의 무거운 책임이 있고 신경 쓸 일도 많지만 거꾸로 그것은 실무자가 부러워하는 '주도권'을 누린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상쇄해 주는 효과를 가져 온다. 직접 관리자가 되어보니 관리자는 마치 뒤에서 훈수 두는 사람과 같아서 직접 앞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지적하고 조언하는 일이 많다. 손수 일하는 것이 아니므로 실수할 일도 적어진다. 그러나 실무자는 앞에서 발로 뛰고 손으로 일해야 한다. 또 그렇게 다양한 일을 몸소 하다 보면 실수할 일도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실무자는 힘은 힘대로 들고 책망까지 받는다. 더구나 마지막에 사람들 앞에서 스포트라이트는 오히려 관리자가 받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실무자는 소외된다.

 

과부의 두 렙돈 사건처럼 사람들의 스포트라이트는 누구를 비춰야할지 알지 못한다. 이 불합리한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다행히도 내게는 신앙이 있다. 누가복음 17장 10절의 말씀대로 우리는 그저 최선을 다해 일하고 칭찬을 받는 못 받든 그저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은혜시대에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음으로 사는 자들’(히브리서 11장)이기 때문이다. 구약시대, ‘증거로 사는 자들’처럼 자신의 수고가 자신을 증거하는 '자기 의義'가 되면 그 수고가 인정받지 못했을 때 가인처럼 분노하고 시기하게 된다. 힘들게 노력했는데 마지막을 그렇게 마귀에게 속해서 더럽히면 안 된다. 그러므로 은혜시대에 사는 충성된 실무자들을 타락시키는 가장 큰 유혹은 '자기 의'다.

D. epilogue

다시 내의원 행사장으로 돌아갔을 때 행사는 마무리를 짓고 봉사자들과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는 중이었다. 갓 20대가 된 듯한 젊은 청년들 가운데에는 나를 진료해 준 60대는 된 듯한 한의사도 있었다. 교수님께서 권하셔서 엉겁결에 그 한의사 옆에 환자로서 함께 촬영을 하였다. 언뜻 본 카메라의 LCD화면 속에는 나보다 10~20년 어려 보이는 청년들 속에 끼어 있는 내 모습이 비춰 보였다. 젊은이들 속에 있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항상 놀라움의 연속이다. 사실 나는 나보다 10~20년 어린 젊은 여자들 틈바구니에서 청일점으로 일하고 있다(부원장님을 제외하자면). 그녀들과 일하면 가장 놀라운 점은 너무나 세세한 것을 관찰하고 기억하고 그것으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었다.

 

업무에 대해 말하는 방법도 다르다. 나는 업무가 전체적으로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저렇게 가면 좋겠다고 말하는 반면, 그녀들은 이런 사건이 있으니 업무는 이렇게 바꿔야 한다, 저런 사건이 있으니 저렇게 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구체적인 사례 중심으로 말한다. 내가 나이 들어 꼰대가 되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히 나는 연역적으로 사고하고 있었고 그녀들은 귀납적으로 사고하고 있었다. 그것이 때로는 큰 마찰로 이어지기도 한다. 내가 전체적인 통계를 근거삼아 내린 판단을 누군가 일부 사례를 가지고 반박하는 경우가 있었다. 온갖 사례들을 기억해서 조목조목 반박하는데 정신이 현황할 지경이었다. 더구나 내 편이 한 명도 없었는데 내가 생각해도 신뢰감을 줄 수 있는 것은 주관적인 사유가 아니라 객관적인 사례들이었다. ​그 마찰은 결국 근거를 통합하지 말고 기준에 따라 분류한 후에 각각 통계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막을 내렸다. 내 추상적인 사유가 구체적인 경험 앞에서 무릎 꿇은 것이다. 이제 나는 나를 바꾸지 않으면 그녀들과는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의 귀납적인 사고를 배우고 인정해 주고 있다. 어쩌면 한의학도 우리 모든 어른들도 그렇게 해야만 오늘날 양의학을 신뢰하는 현대인들, 귀납적인 사고를 가진 젊은이들과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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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문득 사무실 일이 걱정이 되어 사내 메신저를 열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업무 메시지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 중 한 메시지에서 첨부 파일이 열리지 않아 담당 직원과 sns로 얘기하던 중에 별 생각없이 존덕정에서 촬영한 사진을 한 장 보내 주었다. 연못과 나무와 꽃과 풀과 햇빛과 정자가 어우러져 복잡하지만 기막히게 아름다운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보면서 이제는 몬드리안에게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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