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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관 칼럼] 영화 <덕혜옹주>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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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호 감독의 영화 <덕혜옹주>가 손예진 박해일을 주연으로 지난 8월 3일 전국에서 개봉됐다. 잊어진 대한제국황실의 마지막 옹주라는 역사적인 추억과 함께 한 달여 동안 6백만에 가까운 관객들을 동원했다. 대한민국 역대영화흥행순위 58위로 대단한 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뜨거운 논쟁도 야기했다.

 

영화 <덕혜옹주>

 

 그 논쟁의 핵심은 과연 영화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덕혜옹주가 항일독립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는가에 관한 진위여부였다. 8월 15일 아침 9시 채널A에서 방송된 <돌직구쇼>에서 패널들은 이구동성으로 덕혜옹주의 항일독립투쟁에 관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모두 허구라고 주장했다. 

 

 한 여성패널은 대한황실 구성원들 중 단 한명도 독립운동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대한민국이 입헌군주국이 될 수 없게 된 결정적 원인이 되었고, 그래서 우리는 그런 황실이 필요치 않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더구나 그 여성패널은 덕혜옹주의 정신 병력을 강조하며 항일독립운동은 고사하고 영친왕의 상해임정망명 주도는 가당치도 않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옆에 있던 남자 패널은 한 술 더 떠 이승만이 황실재산을 몰수하고 황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이유는 당시 황실이 존경받을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고, 명성황후 역시 나라를 위해 싸워 존경받은 것이 아니라 일본에 각을 두었기 때문에 국민들의 일반적인 반일감정으로 인한 반사이익이었을 뿐이라는 논리를 개진했다.

 

 문제는 그 쇼프로그램에 참여한 패널들이 덕혜옹주와 관련된 전공역사학자들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덕혜옹주의 삶이나 대한제국황실의 항일독립투쟁에 관한 단 한 편의 논문이나 그 흔한 칼럼조차도 작성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덕혜옹주나 대한제국황실에 관해 모든 것들을 간파하고 있는 것처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들의 천편일률적인 관점에서 일방적이며 무책임한 억측들과 단언들을 쏟아냈다는 사실이다.

 

 덕혜옹주가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자료도 없지만 그렇다고 독립운동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친일역적행위에 가담했다는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덕혜옹주의 삶 자체가 항일독립투쟁과 전혀 무관하다고 몰아붙이는 식의 일방적인 언사는 생명이 위협받던 긴박한 상황 하에서  사소한 기록조차 남길 수 없었던 왜정식민억압착취기간 동안 이름도 대가도 없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순국한 수많은 항일독립투사들의 고귀한 희생에 모욕을 가하는 언어도단이며 무례하고 천박하기 짝이 없는 추태라 할 수 있겠다. 

 

 고종 황제의 자주독립투쟁을 비롯한 순종 융희황제의 독립협회창간 순정효황후의 독립군자금지원 의친왕의 상해임정망명시도 이우 왕자의 왜구정략결혼저항 그리고 헤이그밀사 이준 이상설 이위종의 순국 등 수많은 대한황족들의 목숨을 건 항일독립투쟁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들이다. 특히 의친왕은 부친 고종 황제의 내탕금을 다 소진하기까지 항일독립투쟁에 앞장서다 인사동 사동궁에 억류되어 왜구역적매국노들의 감시와 핍박으로 화병과 함께 전 재산이 몰수되는 수모를 겪다 안동별궁 쪽방에서 비참하게 흉서 하셨다.

 

 분명한 사실은 이승만이 황실이 존경받지 못해 재산을 몰수한 것이 아니라 당시 황실구성원들의 지속적인 독립운동투쟁과 이로 인한 국민들의 황실경외심 확산 그리고 거부될 수 없었던 황실의 뿌리 깊은 존재감으로 위기의식을 느껴 자신의 정치적 야욕에 걸림돌이 되는 황실의 제거가 우선순위일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일본에 가 영친왕을 협박하여 환국을 막는 악행을 저질렀고 결국 대한민국은 황실이 인정되지 않는 미국식 대통령제국가로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권력자들의 편에서 거시적이며 무용담적인 이야기들과 함께 연대기적인 정확성을 바탕으로 구성된 역사라 할지라도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 진정한 의미성과 감동적인 교훈들을 일깨워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저 과거의 기록일 뿐이다. 오히려 시대를 뛰어 넘어 민초들의 입에서 입으로 끊임없이 전수되고 있는 진솔한 구전설화나 종교적인 이야기들이 의미심장한 메시지의 함축성과 함께 구체적인 삶의 방향성과 미래적인 비전을 제시하여 주며 그 내용의 가치성을 더욱더 심화시켜 주곤 한다. 

 

 영화 <덕혜옹주>는 “역사가 잊고 나라가 감췄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라는 머리말로   시작된다. 13살에 볼모유학으로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왜구역적매국노들의 간계로 핍박받을 수밖에 없었던 덕혜옹주의 비극적인 삶은 포괄적이며 거시적인 측면에서 암울한 식민억압착취기간 동안 무자비하게 착취당한 황실과 강제징용자들 그리고 위안부 피해자들과 대한제국민초들의 서글픈 삶들뿐만 아니라 나라를 되찾기 위해 기나긴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 했었던 수많은 무명 항일독립투사들의 외롭고도 고통스런 삶들을 대변하고 투영한다.

 

 또한 자필일기나 정확한 역사기록이 없는 덕혜옹주 개인의 비참한 삶은 친일역적매국노들에 대한 철저한 응징과 과감한 청산이 종결되지 않은 21세기 현재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에게 냉철한 과거 역사인식의 불가피성을 일깨워 준다.

 

 실제적으로 덕혜옹주는 볼모유학시절 일본정부의 온갖 감시와 핍박에 시달렸고 대한제국의 대외적인 자주독립천명과 항일투쟁에 앞장섰던 부친 고종 황제의 왜구들에 의한 독살사실을 경계하여 직접 싸간 음료 외에는 마시지 않았다. 더구나 조국의 문화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한글서적독서와 한국어 일기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정신질환의 골이 깊을 대로 깊어진 1989년 낙선재에서 별세하기 몇 달 전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라고 쓴 메모에서 덕혜옹주의 간절한 조국사랑이 확인되며 더불어 젊은 시절 항일독립투쟁에 적극적이었을 것이라는 유추도 가능케 한다. 이는 길고 수려한 미사여구(美辭麗句) 보다도 단호하고 간략한 한마디 한 문장에서 그 사람의 확고한 사고방식과 정신세계가 간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낙선한 정치인들이나 사무실 임대는커녕 단 한 명의 시급직원 조차도 고용할 수 없는 자칭 정치연구소소장들의 말장난 놀이터로 변질된 종편채널 토론프로그램들은 매 방송시간마다 역사적인 객관성이나 사실적인 근거도 없는 막무가내식 발언들을 마구 쏟아낸다. 이런 프로그램들로 인해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왜곡된 역사인식 함정의 도가니 속에 빠져들게 되어 상호 소통하는 방식을 무시하게 된다. 결국 국민 간 갈등의 골을 깊게 하여 벽창호-절벽과도 같은 불통사회의 구조를 양산하고 만다.  

 

 따라서 시청자들의 객관적이며 냉철한 역사인식 확립만이 그릇된 종편채널 토론프로그램들의 자가정화(自家淨化)를 이끌어 낼 수 있고 대한민국 정치경제의 주도권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왜구역적매국노들과 그 자식들의 양심들을 일깨워 나라를 팔아 추악하게 얻은 불의한 재산들과 권리들을 그들 스스로 국가와 국민들 앞에 회개하는 마음으로 환원할 수 있게 한다. 이로서 왜곡된 역사는 바로잡히게 되며 왜구식민억압착취기간 동안 덕혜옹주와 같이 비참하고 억울한 삶을 살았던 황실구성원들과 항일독립투사들 그리고 그 후손들의 마음들이 치유될 수 있게 되며 국가유공자들로서의 공식적인 예우혜택시행 적용도 가능케 된다. 

 

 

김영관 (PhD., McGill)

 

사단법인 한국효문화원 원장, 하버드대학 옌칭연구소 방문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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